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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이슈 와 사건 사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의 이야기, 꼬꼬무 강화도 해병대 총기 탈취 사건.35세 범인 조씨, 황당한 범행 동기. 총기를 지키다 목숨을 잃은 안타까운 희생자 박일병 사연까지

by 그릿이슈 2024. 4. 4.

■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의 이야기'에서는 2007년 발생한 강화도 해병대 총기 탈취 사건에 대해 재조명했습니다. 범인은 당시 35세 조 씨로 밝혀졌습니다. 조 씨는 10년을 사귀고 자신을 떠나간 애인에게 자신이 파멸해 가는 모습을 보여 고통을 주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했습니다. 사건 과정에서 총기를 끝까지 지키다 목숨을 잃게 된 박일병의 안타까운 사연도 꼬꼬무에서 재조명했습니다. 

 

 

 

 

1.  '꼬꼬무'가 이번엔 2007년 발생했던 강화도 해병대 총기 탈취 사건을 재조명했습니다.

1월 26일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는 2007년 12월 전국을 공포에 떨게 했던 강화도 해병대 총기 탈취 사건의 숨겨진 이야기가 공개했습니다.

2007년 10월 경기도 이천 중고차 매장에서 기이한 절도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매장에 찾아온 30대 남자는 그랜저를 타고 모자를 깊게 눌러쓴 모습이었습니다.

강화도-해병대-총기-탈취범-당시-35세-조씨
인천-강화도-해병대-총기-탈취범-조씨

그는 지프차를 구하고 있다며 하얀색 코란도 한 대를 지목했고, 중고차 직원이 몰고 있던 코라도를 자신이 직접 몰아보겠다며 직원을 차에서 내리게 한 사이, 코란도를 몰고 그대로 도주해 버렸습니다.

 

난데없는 차량 절도범에 놀란 중고차 매장 직원이 바로 경찰에 도난 신고를 했는데 알고 보니 남자가 두고 간 그랜저 역시 이틀 전 도난신고 된 차량이었습니다.

 

절도범은 이틀 간격으로 차량을 두 대나 훔친 것이었습니다.

 

 

 

2. 절도범의 진짜 목표물이 드러난 건 그로부터 두 달 뒤였습니다.

 

두 달 전 코란도를 훔쳐간 그 남자는 12월 6일 저녁 인천 강화도에 나타났습니다. 

 

2007년 12월 6일 오후, 인천 강화도 황산도 선착장 해안도로에 도난 신고된 코란도 승용차가 정차돼 있었습니다.

 

범인은 도난된 코란도 차량의 번호판의 번호를 조작해 바꾸었고 차량 앞부분에 캥거를 범퍼를 설치했습니다. 

캥거루 범퍼 차량의 충격은 보통 차량의 9배라고 합니다.   

 

차량에 탑승한 인물은 당시 35세 조 모 씨였고,그는 평소 해당 도로를 통해 해병대 병사들이 이동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차량에 흉기를 싣고 기다리던 당시 35세 범인 조 씨는 2007년 12월 6일 오후 5시 30분께 해병대 병사 박일병과 이병장이 자신의 차량을 지나쳐 걸어가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이들과 거리가 조금 떨어지자 조씨는 곧바로 자신의 차량을 움직여 이 병사들을 시속 20㎞ 속도로 들이받았습니다.

 

두 병사를 들이받은 차량은 유턴을 해 쓰러진 두 병사 인근에 멈춰 섰습니다.


조 씨는 의식을 잃고 움직이지 못하는 이들에게 다가가 “다친 데 없느냐”라고 부축하는 척 안심시킨 후, 곧바로 소총을 빼앗으려 했고, 숨기고 있던 25cm의 회칼을 꺼내 공격했습니다.

이에 이 병장은 총을 뺏기지 않으려 범인을 수차례 공격했고, 이때 범인이 쓰고 있던 모자가 날아갔습니다. 그러자 범인은 자신의 얼굴을 본 이 병장의 얼굴을 칼로 긋고 갯벌로 밀어버렸습니다. 

이병장을 제압한 조씨는  곧바로 쓰러진 박 일병에게 다가갔습니다.

 

그 순간 의식이 돌아온 박일병은 총을 뺏기지 않으려고 소총과 손을 묶어서 버텼고, 이에 범인은 두 번째 칼을 꺼내 박 일병의 허벅지를 7군데 찌르고 소총과 탄통과 수류탄을 빼앗아 도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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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을 지키려는 박일병을 7군데나 찌른 범인 조씨


이후 점점 의식이 흐려지던 두 병사를 목격한 시민들의 신고로 이들은 병원으로 후송됐고, 이 병장은 목숨을 건졌지만 박 일병은 장기 손상과 과다 출혈로 너무나 안타깝게 그대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당시 박일병은 너무나 어린 나이 20살로 그렇게 세상을 먼저 떠나게 된 것이었습니다. 

 





3. 범행 후 모든 길목에서 검문검색이 시작됐지만 조 씨는 이미 인천을 벗어난 상태였습니다.

 

조 씨가 총기를 탈취하고 2분 만에 강화도를 벗어나, 차를 처리하는 데까지 단 5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경찰은 강화도에서부터 차가 발견되기까지에 5개의 지역을 지나야 했는데,

청북 톨게이트 직원이 돈을 내지 않고 달아나는 조 씨의 차를 발견했고 톨게이트의 CCTV에 햇빛가리개를 내리고 갑 티슈까지 뽑아 놓은 상태라 범인의 코와 입만 찍혀있었습니다.

청북-톨게이트-CCTV에-얼굴의-일부만-찍힌-범인-조씨-사진
청북-톨게이트-CCTV에-얼굴의-일부만-찍힌-범인-조씨

 

 

코란도 차량을 타고 유유히 현장을 빠져나간 조 씨는 증거를 없애기 위해 경기도 화성에서 자신의 차량에 불을 질렀습니다.

 

최전방 지역에서 대낮에 무장한 군인을 대상으로 한 범행에 군과 경찰은 비상이 걸리며 최고 경계태세인 진돗개 하나가 발령되었습니다. 탈취된 무기는 K2 소총 1정과 실탄 수십 발과 수류탄이었습니다.

군경합동수사본부는 박일병이 범인과 몸싸움을 할 때 박일병의 귀마개에 묻은 혈흔과 이병장이 본 범인의 모습을 토대로 몽타주를 작성하고 전국에 공개수배했습니다. 

해병대-총기-탈취범-몽타쥬와-도난-차량-사진
공개수배-당시-해병대-총기-탈취범-몽타쥬와-도난-차량-사진

언론에 사건이 대대적으로 보도되자 조 씨는 도피를 시작했습니다.

 

총기 탈취범은 사건 발생 5일 후인 2007년 12월 11일 의외의 곳에서 흔적을 보였습니다.

바로 부산에서 편지 봉투가 발견됐는데 ‘경찰서보 내주세요. 총기탈치범입니다’라는 띄어쓰기도 맞춤법도 엉망인 글씨였습니다.

 

편지 내용 중에는 “전남 장성 백양사휴게소 인근에 총기를 묻었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범인-조씨가-보낸-편지-사진
범인-조씨가-보낸-편지-사진

또 경찰이 찾은 단서는 자신의 것이 아니고라는 등의 횡설수설한 내용도 적혀 있었습니다. 

군경수사대는 범인이 편지에서 버렸다는 백양사 휴게소로 출동하고 대대적인 수사팀을 동원해서 총기 찾기를 했고 장난 편지인 줄 알았던 편지 내용과 같이 총기와 탄창, 수류탄등 강제 탈취를 했던 모든 것을 찾게 되었습니다.


 

 

4. 용산 경찰서 강력반 수사팀은 편지에서 지문을 채취했고 용산구에 사는 한 남자의 지문이 같다고 확인되었습니다.

 

남자는 35세의 조영국으로 주민등록 정보로 경찰은 조 씨의 얼굴을 확인했습니다.

 

사건 발생 일주일 뒤, 조 씨가 종로에 나타날 거라는 정보가 입수되고 형사들은 종로 3가 일대를 감시했고 한 남자가 귀금속 상가에서 걸어 나왔고 사진 속 범인 조 씨였습니다.

형사가 남자에게 다가서자 범인은 도망가기 시작했고, 사건 일주일 만에 서울 한복판에서 조 씨는 검거가 되었습니다.

 

범인은 박일병의 죽음에 대해 죄송하다고 하며 허무함을 주었습니다.  형사는 키도 조그맣고 몸도 왜소해서 검거해놓고 보니 허탈했다고 했는데 조 씨는 대학애서 금속공예를 전공하고 대학원까지 가서 보석디자이너라는 직업을 갖고 있었습니다. 

 

조 씨는 금속 공예를 전공해 캥거루 범퍼를 직접 설계했고 번호판도 스스로 만들었습니다.

 

조 씨의 메모에는 원자폭탄, 불바다 같은 내용이 있었고 매트리스에는 공기총, 전기충격기등 다양한 무기가 발견됐고 블로그에 스스로가 다중인격이라고 하면서 그날의 사건을 "진눈깨비가 날려서 그랬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4. 수사결과 조 씨는 어처구니없는 동기로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10년 넘게 사귀었던 여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받자 심리적 복수를 하기 위해 총기를 탈취해 추가 범행을 계획한 것이었습니다.

 

조 씨는 수사 과정에서 “내가 죽거나 감옥에 가면 여자친구가 자책하고 후회할 것이라 생각하고 전 여자친구에게 정신적 고통을 주고 싶었다”라고 진술했습니다.

조 씨는 민간인 신분이었지만 초병살해, 군용 물강도살인, 초병상해, 군용 물강도상해 등의 군법을 적용해 군사법원에서 재판을 받았습니다.

 

조 씨는 사건 2주 전 강화도에 등장해 사전 답사를 했고, 그의 범죄는 철저히 계획된 범죄였습니다.

 

조사 결과 조 씨는 강화도와는 아무런 연고도 없었고 오프로드 차량 동호회 때문에 강화도 지리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조 씨가 편지를 보내지 않았다면 평생 미제 사건에 남겨졌을 거라는 후문이 남겨졌습니다.

 

1심인 해병대사령부 보통군사법원은

2008년 4월 “사전에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했고 총기탈취 목적 달성을 위해 흉기를 휘두르고 급기야 초병을 살해했다”며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하지만 2심인 고등군사법원은 조 씨가 병사들 충돌 시 브레이크를 밟았고 처음부터 흉기를 사용하지 않았던 점 등을 근거로 “초병살해 고의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1심 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15년을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당시 조 씨가 피해 병사들이 초병으로서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보기 어렵고, 단순히 부대로 복귀하거나 근무하기 위해 이동 중에 있다고 인식했다고 봐야 한다”라고 판단했습니다.

 

대법원도 같은 해 2008년 12월 2심 판결을 그대로 확정했고, 15년 형을 마친 조 씨는 2022년 12월 만기 출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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